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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0년 간 대한민국의 헤게모니를 바꾸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 하며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이제 우리의 상식을 무기로 주권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반갑다. 난 그냥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다.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도록 한다.
“우리 게이들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나?”
물리적인 의미에서 말하자면, 우린 일단 지구에 태어나 있다.
그냥 우린 지구에 있고, 지구의 동북아시아 권역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겠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간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인지한다.
니들이 싫어도 우리 게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형성되어 있는
각 나라만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그 나라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존재한다.
니들이 중공에 태어났으면
국기 게양식에 참여하고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교육받으며
출세를 위해 공산당에 가입하거나
소년조직에 가입할 때 충성 서약을 하며 자라난다.
니들이 미국에 태어났으면
초등학교에 가서 아침에 The pledge allegiance를 읊고,
역사시간에는 이 나라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니들이 북한에 태어났으면
김정은개씨발련에게 충성할 것을 주입받고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생활총화를 하며 살아간다.
간단히 살펴보면 각 나라마다 분명히 체제와 가치관, 지배적인 문화와 이념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다음 세대에게 교육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근데 니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우리는 뭐 하냐?
국기에 대한 경례 있었나?
애국순열에 대한 묵념.
이런 거 다 어느 순간부터 약식화 되거나 생략되는 게 이상하지 않나?
이건 뭐 다른 맥락이다.
그러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그래서 묻는다.
니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냐?
니들한테 이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니들이 생각하는 이 나라의 ‘헤게모니’는 무엇일까?
헤게모니란 단어가 있다.
구글에 ‘헤게모니’라고 치면 대충 이렇게 정리된다.
“무리 가운데서 우두머리를 차지하여 나머지를 지배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나 힘.”
좆무위키를 뒤져보면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그리스어 ἡγεμονία(hegemonia, 권위/지배)가 어원이며,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옥중수고(Quaderni del carcere)』에 쓰면서 유명해졌다.”
더 자세한 어원은 알렉산더 대왕 치하의 마케도니아에 존재하던 '헤게몬'이라는 직책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우리는 그냥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원래의 뜻이
그람시에 의해 "문화적 주도권", "그 사회의 지배적 사고"로 재정의되어 퍼져나갔다는 점만 인지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그람시는 '헤게모니'가 무엇이라 생각했는가?
우선 그는 "헤게모니(Hegemony)“는, 단순한 지배(domination)과 어느 정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먹을 꺼내기 전에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며 윽박지르는 거로 묶어봤자 의미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예를 들어 동네 힘센 사람이 산에 터널을 뚫자,
강에 다리를 놓자고 '제안'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만약 그 양반의 심기를 거스르면 한 대 때려멕힐까봐 말을 따르는 건 domination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말을 거스르기에는 그동안 이 동네에서 해준 것도 많고,
동네 사람들이 이 힘센 사람의 말을 따르고 있어 감히 반기를 들기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면,
이 사람은 동네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람시의 이 "헤게모니"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칼럼의 일부를 발췌하여 인용해보겠다.
헤게모니가 물리적 힘을 거부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람시는 정상적인 형태의 헤게모니는 물리적 힘과 합의가 결합될 경우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다만 분석적으로 강제와 힘이 지배의 핵심적 차원이라면
헤게모니에는 지적,도덕적 지도력에 의한 자발적 합의가 그 본질적 속성이 된다.
따라서 헤게모니를 좁은 의미에서 규정한다면,
그것은 지적, 도덕적 지도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규정하게 되면,
(지적, 도덕적) 지도력과 (물리적 강제와 힘으로서의) 지배가 결합된 통치체계 혹은 지배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전산책 |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사회비평 제 5권, 나남출판사, 김성국, 1991.
그렇다. 헤게모니에서 중요한 건 바로 “지적, 도덕적 지도력에 의한 자발적 합의”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통치체계 및 지배 상황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는 걸 알 수 있다.
말이 어려운가? 별로 어렵지 않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좌좀들을 비웃는 말 중에 “우덜은 이렇게 한당께~”의 이야기가 있다.
로마의 법과 우덜식이 바로 헤게모니다.
로마의 헤게모니와 우덜의 헤게모니다.
적어도 나는 그람시의 헤게모니에 대한 페이퍼를 읽고 이렇게 해석했다.
그람시는 밥 쳐먹고 어떻게 이 사회에 혁명을 이끌어낼 것이며 이를 완수할 지 고민한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혁명은 헤게모니의 장악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혁명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었다.
(충실한 맑스주의자 답게, 하지만 유물론은 거부했던 사람이다.)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사회주의로 이행하려면,
헤게모니를 형성할 집단이 필요했다.
그람시에게 있어 러시아 혁명처럼 다 같이 들고 일어나 다 때려부수는
"기동전 또는 정면공격"은 일반적인 서구사회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오히려 그는 "장기전"으로 혁명을 진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념적 무장을 위한 정치교육 + 그 교육을 수행하는 집단으로서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개념을 들고 온다.
따라서 기존의 사회에 점령하여 혁명을 이끌어내기 위한 "진지"를 구축하여 이를 중심으로 '참호'를 파고,
"완성된 혁명을 창출시키기 위한 사전의 혁명과정"이 되어야 함을 그는 강조한다.
"...(선략) 현재의 지배계급이 수동적 혁명을 통해서 지배권은 장악하더라도 헤게모니는 장악하지 못한 때,
보다 진보적인 대항계급이 은밀하게 대항헤게모니의 세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보다 진보적인 대항계급"은? 다름 아닌 '지식인들'이 맡아야 한다.
이 대중의 의식을 점차 바꾸어 나가기 위한 지식인 계급의 성격을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판적인 자아의식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전위적인) 지식인 엘리트를 창출한다.
인간 대중은, 포괄적인 의미에 있어서,
스스로를 조직화하지 않고서는 자기를 분별하지도 못하고, 독립성을 지니지도 못한다.
지식인이 없는 조직은 있을 수 없고, 조직자와 지도자 없는 조직 또한 있을 수 없다.
이념에 관한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탐구를 전문으로 하는 지식인집단은
조직에 필요한 이론-실천의 연관성을 분명하게 식별해 준다.
그러나 지식인의 창출과정은 길고도 험난하며,
전진과 후퇴, 이합집산의 모순으로 가득차 있으며, 흔히 대중의 복종을 요구하기도 한다."
여기서 바로 "진지전"의 무서움이 드러난다.
이들에게 있어 '대중'은 계몽의 대상이자, 헤게모니의 창출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대중은 집단을 원하고, 따라서 "지식인 집단"이 '이론'을 토대로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청사진을 그려줘야 한다.
느리고, 꾸준하게 사상을 심어 넣은 뒤 "사회적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집단을 이끌어내는 것이
그람시가 말한 '대항헤게모니'의 창출 결과인 셈이다.
그러니 사실 좌파들의 종특인 내로남불과 위선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 새기들은 사람들을 위하는 게 아니다.
그냥 꺼드럭거리고 말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걸 지난 30년도 더 넘게 좌파들은 진행해온 셈이다.
어딘가부터 이상하다는 생각해본 적 없나, 우리 게이들은?
왜 “애국”, “자유”, “사랑” 등의 단어가 고리타분하고 이른바 ‘극우 틀.딱 태극기부대’ 취급을 받아와야했나?
왜 그들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았나?
바로 그람시가 주창한 “진지전”의 개념에 따라 진보지식인들이 헤게모니를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그 대부가 백낙청, 이영희 .. 등이 있지만. 이 글의 주제와 맞지 않으니 그들에 대한 언급은 치우도록 하겠다.
딱 이렇게 나는 말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탄핵정국과 계엄령 선포에 있어서 왜 우리 보수진영이 ‘계몽령’이라고 말했고,
그가 “젊은이들이 깨어나 미래가 있다”라는 맥락의 말을 했는지 생각해봐라.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의 헤게모니가 좌파들에 의해 잠식되어 있고,
너무나도 오랫동안 수행된 진지전의 결과로 이미 그것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따라서 ‘일거에 척결’은 그가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좌파들의 “분단체제”, “공안정국”, “민중민주주의”.. 등의 키워드로 대표되어지는 헤게모니는
너무나도 단단하게 이 나라를 옭아매고 있어서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이 나라를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최후변론을 읽으면서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는 개헌과 ‘87년체제’란 키워드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았다.
깊이 있는 사유를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윤석열 대통령은 이 글의 초반부처럼, 질문을 국민들에게 던졌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는가?”
헤게모니란 걸 한 번에 깨부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언어로 이를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던졌다.
이것이 그람시, 그리고 한국의 그람시들(백낙청, 이영희 등)과 윤석열 대통령의 차이점이다.
전자에게 있어 “사람들”은 지식인 집단에 의해 계도되고, 이끌어져야 하며
집단으로 모여 사회변혁 및 혁명을 이끌어낼 도구가 되어야 한다.
주체? 민중? 민족? 이건 전부 입 바른 소리다.
어쨌든 그들은 ‘헤게모니’를 위에서 아래로 ‘뿌린다’
후자에게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깨어나서,
세상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생각하는 - ‘민주주의’의 주권자로서의 몫을 다 하는 - 이들이다.
그는 이 나라에 ‘헤게모니’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기를 바라며 키워드를 ‘던졌다’
나의 해석이 틀렸을 수도 있다, 당연히.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봐라.
최후 변론에 와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일단 이렇게 생각한다. 그대들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여야 한다 생각하는가?”
윤석열은 이 나라의 헤게모니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미디어 시대에 정치인은 연예인과 비슷한 위치일지도 모른다.
장기말일지도 모르고, 프로파간다의 나팔수일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그냥 딱 하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지난 40년에 걸친 대한민국의 헤게모니를 재정의하고, 새롭게 바꾸려 한다.
제2의 건국이란 표현이 괜히 나왔겠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의 영향을 무조건 받는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고 당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에게 ‘87년체제’와 ‘개헌’으로 요약되는 키워드를 던졌다.
니들은 어떤 나라에 살고 싶냐고.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고. 니들의 생각은 어떻냐고.
그의 대선 출마사를 읽어본 적이 있나, 우리 게이들?
내가 몇 부분을 발췌하여 들고왔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국민, 그 국민의 상식으로 부터 출발하겠습니다.
그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습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전에 누구나 정의로움을 일상에서 느낄 수 있게 하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인간은 본래 모두 평등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 없고 모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유민주국가에서는 나의 자유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와 존엄한 삶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입니다.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한 것입니다.
승자 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연대와 책임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민의 권리입니다.”
“정치는 국민들이 먹고 사는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공정과 법치는 필수적인 기본 가치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국민을 위한 정치의 시작입니다.”
“위대한 국민 여러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감사합니다.”
당연히 의심해야 한다.
당연히 견제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의 사고와 생각을 지배해왔던 이 나라의 좆같은 헤게모니를 부숴야 한다.
“그 국민의 상식”이 누구에 의해 오염되어 왔는가?
12.3 이후, 지금까지 달려온 우리 게이들은 그 원흉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 않은가?
“일거에 척결”은 혼자서 못 한다.
미국이 개입하여 도와줘도 결국 그들이 떠나고 나면 남은 건 우리다.
우리가 바꿔야 한다.
우리가 이 나라의 상식을 되짚어야 한다.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지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좆같은 감성글이 아니다. 냉정하게 하는 말이다.
이 나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암약 해오던 그들의 획책에 대해
내 짧은 식견과 글솜씨를 동원해서 몇 개의 글을 더 써보겠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출마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빼앗긴 국민의 주권”이란 표현을 썼다.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자.
우린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 모르고 있었다.
위대한 국민의 상식을 무기로 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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